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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금주법의 역사

by 스위트엔조이 2024. 2. 5.

우리나라 금주법의 역사와 흥미로운 다른 나라의 금주법 역사

 

술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니. 애주가들은 아마 며칠을 못 참고 포도를 으깨 병에 담거나 누룩을 띠워 막걸리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술은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즐거움이 몇 배가 되고 혼술은 또 그것만의 행복이 있다. 요즘은 너무나 다양한 종류와 도수의 술을 접할 수 있고 술 문화 또한 유튜브나 케이블 TV, 위성방송, IPTV에서 자연스럽게 술 마시는 방송을 많이 방영하다 보니 그야말로 술꾼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천국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술에 있는 알코올은 중독으로 인해 건강을 망치는 마약성 물질이라는 시선과 주로 식량을 재료로 만들다 보니 낭비로 판단하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금주법을 시행한 나라는 여러 곳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이슬람교에서 교리상 금지를 한 것이나 미국의 1920년대 ~ 1930년대의 금주법과 소련의 1980년대 금주법이 있다. 우리나라 금주법의 역사와 흥미로운 다른 나라의 금주법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보자.

금주법의 이유

 

아시아권의 경우 금주법은 대개 식량 보존과 절약이 이유였고 주로 식량이 부족해지는 기근이 들면 금주령을 시행했다. 아시아권 국가들의 전통주는 쌀이나 밀 같은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가 주류라 술을 만드는 만큼 밥 지을 곡물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탁주가 아닌 소주 같은 증류주는 곡식이 훨씬 더 많이 소모되었다. 당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술은 일반인보다는 상류층이 즐기는 기호식품이었으며, 유교 문화권에서의 금주법은 상류층의 근검과 기강을 강조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한과도 쌀과 같은 곡식이 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품도 많이 들어 금지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금주법의 역사

 

우리나라도 기근이 들었을 때 식량 절약 차원에서 종종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가에서는 몰래 소주를 만들어 먹는 일이 다반사였고 술은 유교 제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음식이라 술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오랫동안 금주령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선시대 영조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금주령을 선포했다. 초기에는 강하게 규제를 하지는 않았는데 영조 32년(1756)부터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을 시행했다. 종묘제례의 제사에 쓰는 술도 금지되었고 금주령을 위반한 사람은 유배를 보냈다. 그도 모자라 병마 절도사 윤구연은 술을 빚었다는 제보에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강경한 금주령에 세간에서는 불만이 많이 쌓여갔고 영조 43년(1767)에야 금주령을 해제했지만 그 3년 후 술을 마신 이는 더는 벼슬에 들이지 말라고 명한 것을 보면 술을 양지에서 마음껏 먹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만들어 먹을 사람은 만들어 먹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어떻게라도 사서 먹었다. 다음 국왕인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시원하게 금주령을 풀었고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주세령을 내려 면허제를 실시하고 신고하지 않은 술은 밀수로 단속했으며 일본 양조장이 들어와 사케 공장이 많이 생기자 양조 제조를 금지 시켰다. 아쉽게도 이 시기에 한국 전통주들의 대가 많이 끊겼다. 박정희 정부 초기에도 식량문제로 인해 1961년 주세법이 개정되어 순수한 쌀을 술의 원료로 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1965년부터는 모든 알곡으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는 막걸리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증류식 소주 대신 희석식 소주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통일벼 보급 이후 수확량이 늘자 금주 조치가 풀렸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2021년 1월 4일부터 2주 동안 코로나로 인해 순천시에서 행정명령을 통해 낮술 금지령을 발령했다. 당연히 여론은 그렇게라도 해서 코로나를 극복해야 한다는 찬성 측과 사생활 침해라는 반대 측으로 갈렸다.

 

다른 나라의 금주법 역사

 

미국

금주법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1920년대는 수많은 영화의 소재가 됐던 갱단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몰래 술을 만들던 밀주공장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보안관과 갱단 사이의 총싸움이 바로 떠오른다. 금주법은 1919년 미국에서 통과되어 이듬해부터 발효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곡물을 이유로 금주법을 내세웠고 처음에는 농민과 기독교 근본주의자, 그리고 노동자의 음주와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산업자본까지 금주법에 환호했다. 그런데 술의 합법적 생산이 금지되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는 술의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당연히 서민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반면에 금주법을 추진한 사회 지배층은 약간의 돈이 더 드는 불편을 겪었지만 술을 마시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갱단이 밀주 제조에 나서기 시작했다. 알 카포네란 전설적인 인물이 두각을 나타낸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매춘과 밀주, 도박장 등의 사업의 다각화로 1927년에는 축적한 재산이 1억 달러에 이르렀다. 결국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전역이 혼란에 빠져들었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는 금주법을 폐지했다. 연방국가인 만큼 각 주 정부의 결정과 미국 전역에서 금주법이 철폐되는 데는 30년이 더 걸렸다. 1966년 미시시피주의 금주령 철폐를 마지막으로 미국 금주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러시아

러시아는 러시아 제국 말기에서부터 소련 초기에 있었던 금주령과 고르바초프 시절 금주령이 유명하다. 1914년 니콜라이 2세는 군 내 음주로 인한 문제를 없애고자 러시아 전역에 보드카 등 주류의 생산 및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금주령으로 인해 음성적 주류 제조업자들이 활개를 쳤고 이들 중 일부는 젊은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자금이 되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의해 시행된 금주법은 정확히 말하자면 금주령은 아니고 술의 구매에 제한을 둔 것이었는데 술 제조에 소비되는 곡물을 줄여 고질적인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의료비용도 줄여 정부 예산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슬람

요즘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주가 생활화 되어 있다. 교리상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 몇몇 국가는 21세기인 지금도 술을 먹으려면 해외까지 나가서 마셔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리비아는 술의 판매와 생산이 금지이다. 바레인, 모로코, 튀니지는 관광과 무역이 주된 산업이라 술이 허락된다. 알제리, 튀르키에, 레바논, 요르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알바니아 등 개방적이거나 어느 정도 개방화된 국가들에서는 맥주나 포도주 같은 술 제조 밑 수입을 법적으로 허용하거나 판매하고 있다.

 

그밖에 현재도 특정한 목적으로 금주령을 발령하는 경우가 있는데 브라질과 페루,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의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과 인도, 필리핀, 튀르키예, 몽골, 태국에서는 멀쩡한 상태로 투표하라는 의도로 투표일을 전후해서 며칠간 술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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