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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목욕의 역사

by 스위트엔조이 2024. 2. 4.

우리는 언제부터 목욕탕을 이용했을까?

 

즐거운 목욕문화 우리는 거의 매일 목욕이나 샤워를 한다. 물로 몸을 씻는 일은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청결이 건강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못했던 옛날에는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치료를 했다 하더라도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아 죽음을 막지 못했다. 목욕은 역사적으로 보면 치료나 종교적인 목적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목욕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가까운 사람끼리 찜질방에 모여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공유한다. 요즘은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찾는 우리나라의 찜질방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나라는 어떤 목욕문화가 있을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사우나라는 말은 핀란드어이다. 핀란드 사우나에서는 달군 돌 위에 물을 내려서 증기를 발생시켜 체감 온도를 올린다. 또 자작나무 잎으로 몸을 두드리며 마사지를 해주기도 한다. 일본은 온천욕으로 아주 유명한데 일본인은 목욕하기를 좋아해서 집에서는 보통 저녁에 한 번 목욕을 하지만 온천에 가서는 여러 번 탕에 들랑날랑하며 하루 종일 목욕만 하는 사람도 흔하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은 공공시설로서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목욕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해서 수많은 방과 휴식 공간, 사교장을 갖추고 있었다. 또 이슬람의 목욕문화는 로마풍의 공동목욕탕 양식과 동양적인 목욕탕을 혼합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목욕문화인 ‘함맘’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목욕탕의 역사와 목욕문화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단순히 몸을 씻는 의미를 넘어 종교적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집 안에서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인 ‘정방’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치료와 휴식을 위해 온천욕도 즐겼는데 주로 왕족과 양반만이 이용할 수 있었고 일반 서민들은 개울이나 강가 등 노천에서 씻었다. 지금 같은 대중목욕탕은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는데 당시 사람들은 “어찌 남에게 맨몸을 보여주나”하고 거부 반응을 보여 인기가 높진 않았다. 그러다 1945년 이후 대중목욕탕이 급속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즘은 찜질방이 많이 생겨 인기를 끌고 있다. 찜질방에는 한증막, 자수정방, 소금방, 얼음방 등 여러 종류의 방과 오락시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물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일반 대중목욕탕에도 찜질을 할 수 있는 곳이 한두 개는 꼭 있는 곳이 대다수이고 수영장에도 목욕탕과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핀란드의 전통 사우나 문화

 

핀란드는 대개 농가나 별장 호수 근처에 사우나가 있고 증기욕과 열기욕을 합한 것으로 치유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나무로 된 사우나 실내에는 양동이와 바가지 자작나무 다발을 놓아둔다. 핀란드인은 사우나를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겨서 누군가를 사우나에 초대한다는 것은 최고의 환대라고 할 수 있다. 달군 돌 위에 물을 뿌려 피부가 증기와 열에 뜨거워지면 자작나무 가지로 비비거나 두드린 후 호수에 들어가 찬물에 피부를 수축시키고 깨끗하게 한다. 핀란드 인구는 550만 명에 불과한데 사우나 시설은 전국적으로 200만 개가 훨씬 넘는다고 하니 핀란드 사람들이 얼마나 사우나를 즐기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의 온천문화

 

일본의 집은 욕실과 화장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 이유는 목욕문화는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온천욕으로 아주 유명한데 목욕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은 집에서는 보통 저녁에 한 번 목욕을 하지만 온천에 가서는 여러 번 탕에 들랑날랑하며 하루 종일 목욕만 하는 사람도 흔하다. 일본의 목욕문화는 더러운 몸을 씻으러 간다는 개념보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러 간다’는 의식이 강해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습관이 없다. 지리적으로 화산이 많아 온천도 많은 일본은 지역마다 향과 성분이 달라 온천마다 색다른 차이가 있으며 느긋하게 목욕물에 잠겨 즐기는 온천문화는 일본인들 삶에 깊이 뿌린 내린 문화이다.

 

로마의 공중목욕탕 문화

 

기원후 60년 무렵 로마에서는 1주 일에 한 번만 목욕할 수 있는 ‘목욕제한령’이 공포될 정도로 목욕탕을 향한 로마인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대목욕장이 풍기 문란이 도를 넘었기 때문인데 목욕탕을 향한 로마인들의 욕구는 220년 무렵에 지워진 카라칼라 황제의 대욕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카라칼라 황제의 대욕장은 1600명을 수용할 만큼 큰데다 오락실, 휴양실 등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300년 무렵에는 856군데나 되는 공공욕장이 로마 시내에서 성행했다. 로마의 목욕탕은 지금의 목욕탕보다 장식이 훨씬 고급이었고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방들이 늘어져 있었다. 로마인들은 노예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하기 전에 기름칠을 하고 사방에 위치한 방에서 운동을 한 후 열탕을 거쳐 한증실로 들어가 스트리질이라는 금속도구를 이용해 몸의 기름과 때를 긁어냈다. 이후 온탕을 들러 냉탕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기름칠을 하면 목욕이 끝난다.

 

유럽의 목욕문화

 

11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에서 신식 증기 목욕이 시작되었다. 뜨겁게 달군 벽돌을 금속 세면기에 넣고 물을 부으면 증기가 발생하는데, 이때 타월로 몸을 푹 싸고 세면기에 웅크리면 수증기를 이용한 한증막이 되었다. 1150년 무렵 영국에서는 풍기문란 단속을 위해서 여자가 남자를 끌고 들어가서는 안됨. 수녀나 부인은 들이지 말 것 등을 이유로 ‘목욕탕 단속령’을 시행했다. 1260년대에는 프랑스, 독일 등에 공중목욕탕이 속속 출현했다. 이슬람식 증기탕, 북유럽식 사우나 등이 대유행이었는데 이 때문에 혼수 도구로 목욕가운과 타월등이 환영을 받았다. 1390년대에는 이탈리아에 온천 붐이 일어나 온천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410년대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남녀 혼욕 파티가 유행했다. 목욕탕에 남녀가 들어가 널빤지 위에 맥주와 소시지 등을 올려놓고 먹고 마시며 목욕도 즐겼다. 1550년 무렵 네덜란드에서는 목욕탕에서 남녀 모두 팬티 또는 내의를 입도록 법률로 정했다.

 

이슬람의 목욕문화

 

이슬람은 청결을 강조한 종교이다. 알라 앞에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유지할 것을 강조한 이슬람 율법은 동로마제국의 목욕문화를 빠르게 흡수해 이슬람 목욕문화인 ‘하맘’을 만들었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 같은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하맘은 고여있는 물을 부정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욕조는 물론 세면대에도 물을 받아놓지 않는다. 수증기를 이용해서 몸의 때를 불린 후 때를 밀며 흐르는 물에 몸을 씻는 하맘의 목욕문화는 씻겨주는 사람이 알아서 씻겨주고 제모도 해주며 마사지까지 해준다고 한다. 하맘을 이용할 때는 남녀 모두 속옷을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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